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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슬기로운 잉크충전 (만년필 편)

작년에 선물 받은 만년필을 시작으로 하여 만년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내가 가지게 된 만년필은 Line 프렌즈 X 라미에서 출시한 만년필이었다.

Line 프렌즈의 샐리라는 캐릭터의 샛노란 바디가 만년필의 몸체에 입혀져 있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밝아지는 색이었다. 

어릴적 잉크에 찍어 쓰던 만년필만 기억하다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잉크가 보충되는 만년필을 써보게 되다니,

아주 늦은감이 있다. 

 

만년필을 사고 보니 잉크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컨텐츠를 보다가 알게 된 이로시주쿠에서 나오는 잉크를 하나 샀다.

나는 새로 산 잉크를 얼른 써보고 싶어 처음 장착되어 있는 라미의 잉크를 열심히 써재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역시 열심히 만년필을 쓰다가 중간에 볼일 보러 급하게 집을 나서면서 만년필 뚜껑을 열어두고 나가는 바람에 잉크가 말라버렸다.

인터넷에 돌이킬 방법을 찾아보니,

물을 한방울 떨어뜨려두거나,

극심하게 마른 경우는 물에 잠깐 담가두어라고 적혀있었다.

빨리 잉크를 없애고자 열심히 썼지만, 그래도 쓰이지 않는 곳에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물을 한방울만 떨어뜨리고 지켜보았다.

그렇게 녹인 잉크는 당일만 반짝 나오고 다음날 다시 쓰려니 도로묵상태였다.

그래서 통에 물을 얕게 받아두고는 잠시만 담가두리라 하며 담가둔 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는 몇 시간을 까먹고 있었다.

아차차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잉크는 물에 녹을 만큼 녹아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 후로 만년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 쓰던 때처럼 끊어지지 않고 쉼 없이 잘 나왔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또 선이 끊어지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만년필 안을 살펴보니 잉크가 보충되어 있던 카트리지에 잉크가 그새 비어있었다.

이건 내가 열심히 써서 그런 걸까,

아니면 물에 담가두던 날 열심히 빠져나간 걸까.

이미 바닥난 잉크통을 바라보며 고민한다고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나는 이때다 싶어 새 잉크를 써볼 마음에 룰루랄라 하며 라미 만년필에 같이 동봉되어 있던 컨버터를 꺼냈다.

나도 용어를 잘 몰랐는데,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잉크통은 카트리지.

충전해서 쓰는 잉크통은 컨버터라고 칭했다.

 

글이 시작된 지가 한참인데 글 제목의 주제가 이제서야 나온다.

빌드업이 너무 길었다.

반성하자.

 

다시 본론으로,

인터넷을 찾아가며 컨버터에 잉크를 충전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우선 만년필 몸체를 돌려 열어 다 쓴 카트리지를 빼고 컨버터 통을 카트리지가 있던 자리에 꽂는다.

컨버터 맨 위에 보면 손으로 잡아서 돌릴 수 있는 부분이 빨갛게 표시되어 있다.

그 빨간 부분을 잡고 돌리면 나사처럼 검은색의 스크류가 서서히 나타나고 잉크가 보충될 투명한 통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돌리면 된다.

그러면 이제 잉크를 충전시킬 준비는 되었다.

 

만년필의 뚜껑을 열어 펜촉을 잉크병에 담근다.

빨간색 부분을 잡고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펜촉 부분에서 잉크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며 잉크가 점점 채워져 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잉크가 채워지는 컨버터를 바라보았다.

 

엥?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르다.

잉크가 거품을 한가득 품고 올라온다.

이게 아닌데.

스크류를 다시 바닥으로 내리고는 펜촉을 덜 담갔나 싶어 더 깊이 빠뜨리고는 다시 닻을 올렸다.

 

그런데 영 마땅치가 않다.

3-4번을 더 시도해 보다가 포기를 하고 펜촉을 건져냈다.

컨버터에 찬 건 거품이 반인데, 펜촉에는 잉크가 한가득 묻어있다.

아까워하며 그 잉크를 닦아 내었다.

뭐 다른 신박한 방법이 없을까 싶어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찾았다.

 

컨버터 전용 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만 있으면 잉크병이 바닥을 보일만큼 다 쓰더라도 손쉽게 잉크를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당장 구매를 서둘렀다.

서두르면서 어무니 몫의 만년필을 하나 더 구매했다.

이번에 캘리그라피를 공부해 보겠다며 열심히 장비빨을 세우는 중이시다.

먼저 사드린 장비들은 딥펜 종류였는데, 

온라인 강의가 있어 찾아보니, 그 선생님은 1.9mm짜리 라미 펜촉으로 수업을 하셨다.

이 기회에 다 사들이자.

 

최대한 할인받으려고 이리저리 샵을 전전하며 제일 저렴한 곳을 찾고,

배송비는 한번만 들여서 재료들을 다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구매할 재료들이 해당 샵에 모두 있는지 확인해 가며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결국 한번에 모든 종류를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났고,

두군데 샵에서 원하는 종류를 최대한 할인받아 주문을 했더랬다.

 

어제 오후 동시에 두 가지 상품이 도착하였다.

 

자자 이제 진짜 실전이다!

 

어무니의 새 만년필로 첫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그냥저냥 해보려니 

컨버터 니들을 처음 보는데 따로 쓰는 방법이 첨부되어오지 않았다.

몇 군데 검색했지만 원하는 정보만 나오는 곳을 못 찾고 버벅거리다가.

방법을 깨달았다. 

혹시 나처럼 정보를 찾아 해 메는 사람 또 있을까 싶어 블로그에도 올려둘 겸 사진을 찍었다.

(이해를 돕기 위함으로 찍었는데 찍을 손이 모질라 엉망인 손도 그대로 노출된 점이 조금 개운치 못하다)

 

아래는 컨버터 니들세트라고 주문한 재료이다.

라미 컨버터니들

 

처음에는 이 재료들을 보고,

아! 컨버터를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이 이 니들세트에 동봉된 통을 쓰는 건가? 생각했다.

요리조리 꾸무적거리면서 조합을 해보다가 이런 쓰임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는,

저 스프링통의 용도를 깨닫게 되었다.

이 스프링통의 쓰임은 우선 잉크 보충 후 뒤쪽에서 다시 설명토록 하겠다.

 

일단 새로 주문한 컨버터 통(잉크 리필통) 포장을 뜯었다.

확실히 니들통에 있던 스프링통과는 차이가 있다.

라미 컨버터

 

빨간 부분을 돌리면 아래처럼 검은색 스크류가 쭉 내려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다음 니들세트에 있던 니들만 컨버터 통 앞에다가 끼운다.

 

잉크병을 열어 니들을 푹 담근다. 

라미 잉크채우기

 

 

빨간 부분을 살살 돌리면 잉크가 점점 빨려 올라오는 걸 볼 수 있다.

 

스크류를 원위치까지 돌려놓아도 잉크가 통 끝까지 채워지진 않아서 왠지 아쉽다.

뭔가 꽉 찬 잉크를 보면 뭔가 더 뿌듯할 것 같은데 채우다 만 느낌이다.

 

어쨌든, 이 부분이 제일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니들을 뺄 단계인데,

니들을 뺄 때에는 절대 니들 방향을 잉크를 보충할 때와 같은 아래방향으로 둔 채 빼면 안된다. 절대.

나는 여기서 일을 냈다.

아래방향으로 두고 니들을 뽑은 건 아니었지만,

완전히 수직이 되게 위로 놓지 않고, 약간의 기울어짐이 있는 상태에서 니들을 뽑다가 잉크를 흘려버렸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수직으로 세운 상태에서 니들 안에 남아있던 잉크가 컨버터 통 안으로 좀 흘러들어 갈 시간을 준 뒤 빼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발생한 사고 현장 포착 (어무니께서 대리 직찍)

 

수직으로 니들이 하늘을 향하게 보게 만든 다음 잉크가 흐르지 않게 니들을 살살 뺀 후

카트리지 자리에 컨버터통을 끼운다. ( 컨버터통 위에 만년필을 덮어씌운다는 표현이 더 이해가 되려나?)

확실히 끼워진 느낌이 들면 만년필 위쪽 바디도 합체시킨다.

그럼 끝이다.

 

어무니 만년필은 여기서 펜촉을 1.9mm까지 바꾸는 작업도 함께 했는데

라미 만년필 펜촉 바꾸기는 별거 아니었다. 금방 끝냈다.

이것도 여기저기 검색으로 알아봤다.

기존에 끼워져 있던 펜촉을 테이프로 감싸듯 붙인 후 바깥쪽으로 당기면 아주 쉽게 빠진다.

그 자리에 새 펜촉을 같은 방향으로 맞춰서 끼워 넣으면 끝.

 

 

자 이제 아까 처음에 말했던 스프링통의 쓰임을 설명하겠다.

 

그 통은 잉크에 담갔다 뺀 니들의 세척용인걸로 보인다. 아마도, 

니들안의 잉크도 그대로 두면 굳어버릴 것이고, 니들이 꽤 길어서 물을 틀어 니들 구멍으로 채워서 헹군다고 해도 

워낙 니들직경이 좁아 쉽사리 헹궈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 스프링통의 용도를 알아챘다.

그 통을 니들 뒤로 끼우고 (잉크보충하듯이)

니들을 물에 담그고 펌프질을 하면 니들 안쪽에 묻어있던 잉크들이 쉽게 헹궈져 나온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 반복하면 끝.

잘 말려두었다가 다음 보충 때 사용하면 된다.

라미 컨버터니들 청소

 

만년필에 직접 끼우고 보충하는 것보다 낭비되는 잉크양이 적고 (만년필 촉에 잔뜩 묻어있는 잉크양이 꽤나 많다)

방향만 조심하여 사용한다면 손에 묻을일 없이 깔끔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아주 사적인 나의 생각이다.

-만년필 장비들을 사모으기 위한 필사적인 논리일지도 모른다.

 

 

내 손에 묻은 잉크는 비누칠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흔적이 선명하다.

면적이 큰 부분은 다 지워졌지만, 

손톱사이로 침범한 잉크는 아직 고대로다.

시골사람들이 수시로 밭일을 하다 보니 손톱밑이 까맣게 되는 것처럼.

 

청록에 가까운 푸른빛을 띤 손톱밑을 보고 있노라니 영화 제 5원소가 생각난다.

청록빛의 푸른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디바

그 영화는 몇번이나 다시 봐도 왜 그렇게 흡입력 있게 봐지는지 모를 일이다.

 

추가로,

다 쓴 카트리지를 활용하여 잉크충전하는 방법을 찾아서 최근에 추가 포스팅을 하였다.

이 방법이 훨씬 쉽고 간편하고 돈도 절약이 되는듯 하니 참고하시길.

 

[시시콜콜] - 슬기로운 잉크충전 (만년필 카트리지 재사용법) - 포스팅 AS

 

슬기로운 잉크충전 (만년필 카트리지 재사용법) - 포스팅 AS

필자는 대략 한 달 보름 전 만년필 충전에 대한 포스팅을 올렸었다. 그때 만년필 컨버터와 만년필닙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사용법이 어려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가 필자의 글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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